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데사 백국 (문단 편집) === 파란만장한 포로 생활 === 에데사는 바로 지르키미쉬와 소크만의 포위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그나마 탕크레드가 섭정을 맡아 겨우 수백의 기사들을 추려서 지르키미쉬군을 격퇴한 덕분에 백국은 생존할 수 있었지만, 지르키미쉬는 또 병력만 날리고 손해만 봤다. 그는 그나마 몸값을 받을 만한 둘을 팔아치운걸 뼈저리게 후회하고는 소크만 몰래 병사들을 시켜 조슬랭과 보두앵을 빼돌렸다. 이 전투에서 지르키미쉬는 자신의 아내를 탕크레드에게 빼앗겼는데, 지르키미쉬는 자기 아내를 돌려주면 1만 5천 베장트의 금 혹은 보두앵 둘 중 하나를 내 주겠다고 보에몽과 탕크레드에게 제안했다. 그런데 여기서 탕크레드와 보에몽은 에데사 백국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속셈으로 1만 5천 베장트를 받아내고는 조슬랭과 보두앵을 내팽개쳐 버리고 만다. 보에몽은 탕크레드를 안티오키아 섭정으로, 다른 친척이자 다음 공작이 될 루지에로를 에데사의 섭정으로 임명한 채 노르만 기사들을 모으러 남이탈리아로 떠나버렸다. 이제 조슬랭과 보두앵은 자력으로 탈출해야 했다. 그들은 지르키미쉬가 다스리는 [[모술]]로 끌려갔다. 포로 생활을 하는 도중인 1107년, 모술은 자왈리라는 용병대장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포위되었는데, 그만 지르키미쉬가 그들에 의해서 포로로 잡혔다. 그들을 사로잡은 지르키미쉬가 끌려가자 조슬랭에게는 기회가 찾아왔다. 조슬랭은 자왈리를 찾아가 6만 디나르를 줄 테니 그와 보두앵을 풀어달라는 제안을 했고, 자왈리는 이를 승낙하여 조슬랭을 몸값을 수금하게 하기 위해 풀어주었다. 조슬랭이 떠난 동안, 모술의 상황은 급박해졌다. 바그다드의 칼리파 무함마드 1세 타파르는 그가 임명한 지르키미쉬를 붙잡고 모술을 차지한 자왈리를 파면하고 맘루크 마우두드를 모술의 아타베그로 임명했다. 자왈리는 모술에서 가까운 한 요새로 도망쳤다. 조슬랭은 조슬랭 나름대로 난관에 봉착했는데, 그가 겨우 3만 디나르 밖에 모으지 못한 것이었다. 조슬랭은 원금의 반인 3만 디나르를 들고 자왈리를 찾아가 자기가 대신 인질이 되고, 에데사에서의 무슬림 활동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줄 테니 3만 디나르로 보두앵을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자왈리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보두앵은 1108년 여름에 겨우 풀려나 에데사로 돌아올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